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메로베우스 왕조 (문단 편집) == 인구 구성 == '프랑크 왕국'이라고 하니까 왠지 현대인들, 특히 동양인들은 프랑크인들만이 살았다는 착각을 하는 경우가 굉장히 잦은데, 메로빙거 왕조~카롤루스 왕조 초기까지 프랑크 왕국의 절대다수는 갈로-로만인이었다. 특히 프랑스 북부와 남부를 가르는 루아르 강을 기준으로 메로빙거 왕조 시대의 루아르 강 남쪽의 프랑크인 유적지나 정착 흔적은 찾기 매우 힘들며, 8세기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 프랑스 남부, 특히 아키텐과 프로방스나 프랑스 북부에서도 오를레앙과 프랑스 동북부 지역은 라틴어가 보존되었고 로마인 및 갈로로마인이 정체성을 유지하며 살았다. 프랑크 왕국이지만 오히려 프랑크인은 소수여서, 카롤루스 왕조 시기가 되면 로마인들이 프랑크족에 동화되는게 아니라 역으로 프랑크인이 로마인에게 동화되어 로망스계 언어를 사용하는 새로운 정체성이 수립되게 된다. 이는 프랑크족의 비율이 다수는 아니나 그렇다고 반달족이나 수에비족, 넓게 보면 서고트족처럼 너무 적어서 아예 별다른 흔적도 못 남기고 소멸해 버릴정도까지는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편, 라틴어랑 별개로 갈리아인들이 쓰던 갈리아어(또는 골어)도 보존되었는데, 로마화된 갈리아인들이 갈리아어를 여전히 쓰거나 로마화되지 않고 남은 프랑스 북부의 극소수 갈리아인들이 7세기가 끝나는 시점까지도 독자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프랑크 왕국이 진정한 의미에서 융화된 것은 카롤루스 왕조 시기로, 프랑크족은 이때쯤되면 위에서도 말했듯 고대 프랑크어를 기반으로 민중들이 쓰는 로망스계 민중 라틴어를 받아들여 프랑스어라는 새로운 언어를 사용하게 되었으며, 프랑크인이 희박하던 프랑스 남부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다. 동시에 라틴어를 쓰는 로마인들도 이러한 추세를 따라 프랑크인들과 공존하게 되면서 프랑크인 지배층-로마인 피지배층이라는 메로빙거 왕조 시절의 구도가 깨지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